바람결에 듣다-丹心

바람결에 듣다-丹心

편집부 | 입력 : 2012/10/08 [18:12]

지난 늦여름, 태풍이 많이도 지나갔다.
사나운 바람으로 인해 수많은 세월을 살아왔던 나무들도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꺾여 버리기도 하고, 뜨거운 햇살 맞으며 영글어가던 열매들도 하루아침에 스러져 갔다.
지극한 애착도 허무함으로 둔갑하는 순간, 모든 것이 잠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리게 푸른 하늘.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과 우주 앞에서 어찌 이리도 나약한가.......하지만 이는 존재의 실체를 파악하는 겸손 이라기보다는 무기력을 느끼게 하였다.

이번 여름은 더욱 더 그 감정에 침잠되어 있었다.
잔인했던 더위 뒤에 몰아치는 태풍은 내게 어떤 의욕마저 휩쓸고 간 듯 그렇게 마음이 누워버려 해야 할 일들을 두고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마당 풀밭에 비치는 쨍한 햇살을 보고도 깊은 우울을 느끼던 어느 날, 마당 한 구석에 붉은 빛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였다.
꽃무릇이었다.
튼튼한 꽃대를 올려 아담하면서도 섬세하게 피어난 그 꽃을 보며 내 마음에 어떤 흔들림이 있었다.
그도 느꼈을 것이다. 꽃을 피우기 전에 불었던 비바람을.......
그런데 그 이후에 여전히 누워있는 나의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당당하게 꽃대를 올려 꽃을 피운 것이다. 내가 당장이라도 꺾을 수 있는 이 연약해 보이는 꽃이 더 강하다는 것에 새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안에 변질되지 않는 순수한 본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다시 그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본성의 소리를 무시하고 현실이 만들어내는 구조의 바퀴 속에 들어가 태엽인형처럼 살아가며 점점 본성의 빛을 잃어 퇴색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평생 자신의 잎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의 붉은 빛을 보며 그 빛은 아마 본성을 향한 처절한 그리움의 색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만나지 못하고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충실한 삶을 살아내고야 마는 그런 삶이야 말로 정말 멋진 것이 아닌가.

오늘 누워있는 내 마음에 꽃무릇 한 송이 선사하며 그에게 이제 일어나라고 인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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