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호국영웅 서병도 소위, 충북북부보훈지청

김재만 | 입력 : 2017/07/14 [11:00]


▲ 기록은 있지만, 충주 살미면에서 출생한 서병도 소위의 사진도 없었다


[보훈/KBBS보훈방송]김재만기자= 1931년 1월 충청북도 충주 살미면에서 출생한 서병도 소위는 1952년 11월 8일 육군 소위로 임관과 동시에 제2사단 제32연대에 전속되어 수색중대 제2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중 중부전선의 화살머리고지(281고지) 전투에 참전하였다.

중부전선의 철원평야 주변에는 백마고지와 281고지(화살머리고지)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중 281고지는 백마고지 바로 서쪽에 위치한 요지로서 이 고지를 적에게 넘겨주면 백마고지까지 서측방으로 위협을 받아 방어가 어려울 수 있었다.

281고지는 역곡천이 동남서측면으로 굽이도는 배수진의 독립고지로서, 적의 전초진지가 바로 눈앞에 자리 잡고 있어 적의 공격이 빈번하였다.

1953년 6월 29일 제2사단 제32연대 제2대대는 281고지의 전초진지인 B고지를 중공군 제23군 제73사단 예하 제218연대의 기습을 받고 피탈하였다. 수색작전의 판단착오로 불시에 당한 기습이었다. B고지는 A고지와 더불어 281고지 서북쪽 기?鰥?있는 전초진지였다.

그 서쪽과 북쪽에 중공군 제218연대의 전초진지가 돌출해 있었는데, 서쪽이 방송고지이고 북쪽이 K고지였다. 방송고지는 적이 온갖 선전방송을 해와 붙여진 이름이다.

B고지의 상실은 281고지의 방어에 큰 위협이었다. 사단장은 즉각 제32연대에 제17연대 제3대대를 배속해 역습을 감행토록 명령하였다. 역습부대는 제17연대 제10중대를 선발로 내세웠다.

여기에 제32연대 수색중대 제2소대가 증강되어 B고지를 동서 양쪽에서 협공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이때 수색 제2소대장 서병도 소위는 역습의 선두를 자원하였다. 제10중대장은 수색 제2소대를 좌일선으로 하여 목표의 서측면에 대한 공격임무를 부여하였다.

서병도 소위는 281고지 정상의 제7중대 OP에서 역곡천변의 평평한 개활지로 흘러내리는 완만한 경사지를 유심히 살폈다.

11시 10분부터 사단 포병단은 B고지와 방송고지, 그리고 K고지 일대에 약 15분간 공격준비사격을 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5분간 연막차폐를 실시하였다. 수색 제2소대는 제10중대의 2개 소대와 함께 11시 30분을 기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역습 우일선을 담당한 제10중대의 2개 소대는 281고지 북쪽의 200등고선을 따라 A고지로 전진하였다. 그리고 A고지 진전에서 저항하던 소대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B고지의 동측배로 공격방향을 전환하였다.

그러나 B고지를 점령한 적은 불과 10여 시간 만에 동굴진지를 두 군데나 구축해놓고 있었다. 따라서 소화기로는 이를 파괴할 수 없어 중대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서측면 8부 능선에서 중대의 상황을 지켜보던 서병도 소위는 제1분대장과 수류탄을 양손에 하나씩 쥐어들고 차폐지점을 박차고 나갔다. 이들은 소대원들의 엄호사격 하에 약 80m의 거리를 교묘히 누벼 동굴진지의 사각에 도달하였다.

소대장과 분대장은 각각 두 개의 총구에 수류탄을 집어넣었고, 잠시 후 폭발음과 함께 적의 자동화기 진지는 파괴되고 말았다. 이를 기회로 중대는 공격개시선을 박차고 나가 역습을 감행하여 목표인 B고지를 완전 탈환하였다.

정부는 중대공격의 돌파구를 스스로의 육탄으로 개척한 소대장 서병도 소위에게 1953년 9월 9일 은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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